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핫코다산 참사 (문단 편집) === 1일차(1/23) =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chinchiko.c.blog.so-net.ne.jp/E5BC98E5898DE99A8AE99BAAE4B8ADE8A18CE8BB8D02-74e92.jpg|width=100%]]}}} || || 행군 초반 || 탐사대는 1902년 1월 23일 목요일 아침 7시경 부대를 출발했다. 행군 초반에는 여정이 매우 순조로웠고 날씨도 혹한기 산악훈련을 하기 적절한 추위 정도였기에 탐사대는 현지 주민들이 자청하는 길 안내마저 사양하며 순조롭게 산을 올랐다. 이 날의 목표지점은 하코다 산에서 20 km 떨어진 타시로 온천. 오후 4시에 부대는 우마타테바 산 정상에 올랐는데 이는 목표지점에서 겨우 4 km 남은 지점이었다. 그러나 오후부터 급격하게 기상이 악화되었다. 차라리 오전 중에 기상이 악화되었다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부대로 복귀하거나, 주둔지를 세우고 사태를 지켜보다가 복귀하는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. 그러나 이미 산 중턱 가까이 올라갔는데 급격하게 추워지고 [[폭설]]이 내리기 시작하자 장교들은 고민에 빠졌다. 내려가자니 지금까지 올라간 것이 모두 헛수고가 되고, 행군을 강행하자니 기상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었다. 결국 갑론을박 끝에 '''[[사망 플래그|일단 계속 가 보자고 결정했는데 이는 대형참사를 만들어 낸 최악의 오판이 되었다.]]''' 그치라는 눈은 계속 더 쏟아지고 밤이 될수록 날씨는 더 추워졌으며 병사 개개인이 휴대하던 [[비상식량]]도 다 얼어서 먹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. 물자를 운반하던 썰매부대인 2소대는 폭설로 본대에 뒤쳐진 끝에 결국 2소대 지휘부는 썰매를 포기하고 썰매에 탑재한 물자를 2소대 병사 개개인이 휴대하도록 지시하였다. 이로써 병사들의 체력부담은 더욱 커졌다.[* 가장 말단 병사는 무쇠솥을 짊어지고 다녔다(...).] 오후 8시가 되어서야 겨우 숙영지를 결정했다.[* 부대 행군에서 숙영지의 결정은 일몰 2~3시간 전에는 결정하는 것이 상식이다.] 부대는 눈을 파서 비박지를 만들었고 오후 9시까지 낙오된 부대도 모두 도착해 취사를 시작하였다. 그러나 8척(2.4 m)을 파도 땅이 나오지 않자 눈 위에 화구를 설치했는데 폭설 속에서 불도 쉽게 붙지 않았다. 게다가 겨우 불을 붙이면 당연히 눈이 녹아버려 화구가 꺼지고 솥이 엎어지는 등 어려움이 계속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